“눈이 오면 삿포로에 갈까요?”
삿포로에 갈까요.
멍을 덮으러, 열을 덮으러 삿포로에 가서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술을 마시러 갈 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전나무에서 떨어지는 눈폭탄도 맞으면서요.
[중략]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의심도 서로 없겠죠.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중략]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 삿포로에 갈까요, 이병률

지인들과 십수 년을 함께한 여행 모임이 코로나와 아이들 입시 등등으로 몇 년간 이어지지 않다가 “눈은 오지 않지만, 날씨 좋은 가을에 삿포로에 갈까요?”로 시작됐다.
급하게 휴가를 만든 멤버들과 비행기표와 호텔만 예약하고 떠난 북해도_삿포로 여행길.
& 상쾌한 공기와 반듯한 거리의 삿포로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의 정령지정도시 삿포로.
숙소가 있던 유흥가 스스키노 거리에서 마주한 삿포로의 첫 느낌은 NIKKA상 사인에서 보듯 여느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왠지 공기는 더 청명하고 도로가 넓고 반듯한 깔끔한 도시였다. 기온은 한국보다 3~4도 정도 낮았지만, 더없이 상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명의 유래인 아이누어의 "삿 포로"(サッ・ポロ,Sat poro, '건조하고 넓은 땅'), 아무도 없는 곳에 홋카이도 개척의 거점으로서 미국식의 계획도시를 건설한 것이 시작이라 하니 설명이 됐다.

매일 2만 보씩 삿포로 시내를 돌며 테시카가 라멘 골목에서 버터 콘이 들어간 라멘을 먹고 가라쿠에서 정말 맛있는 야채 스프카레를 먹고(실은 가라쿠 대기가 너무 길어 같이 운영하는 트레저에서 먹음), 니조 시장에 가서 카이센동을 먹고, 시장 거리에서 달콤하기 그지없는 유바리 멜론을 사먹고, 모든 메뉴가 370엔인 야키토리 체인점에서 원 없이 맛있는 꼬치를 먹었다.
시내에 있는 온천에 갔는데 7장의 티켓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안내와 더불어 신발 락커 키와 옷 락커키를 나갈 때 고객 한명 한명 정확하게 차근차근 매칭해주는 태도를 보니 진심이 느껴졌다.
야키토리 전문점인 TORIKIZOKU는 전국 체인이라고, 전 메뉴 370엔인 저렴하고 푸짐한 메뉴 덕에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식당 앞 패드에 대기 넘버를 입력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길래 다행히 대기가 길지 않나 보다 하고 문에 딱 붙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알바가 나오더니 대기 입력한 사람들을 주변에 찾으러 다니는 거 아닌가. 앞 팀은 10팀, 모두 찾아서 들여보내더란. 웃기기도 하고 저리 진심인가 싶기도 하고.

& 서비스업에 최적화된 일본의 알바들
엔저 때문에 물가는 한국보다 확실히 저렴한 느낌이었고 특히 친절한 직원들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이든 허투루 하지 않고 마구 서두르지 않고 장사를 진심으로 하는 느낌.
함께한 일본어를 가르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알바라고 한다.
일본도 노령화와 고급 일자리가 줄어들며 알바만 전문으로 하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다고.
시급이 쎈가? 찾아보니 2024년 51엔 올라 1055엔. 국내 환율로는 9600원 정도.
우리보다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웃픈 현실.
나라는 부자고 국민은 가난하다는 일본의 현실.
일본 알바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그런데 왜 이리 친절할까?

메이지 유신을 통해 확립된 지금 일본의 교육 가치는 여전히 규율, 도덕 교육, 국민 통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확실히 조직에 맞춰진 보수적인 교육 덕분인가?
조금은 폐쇄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국민성이 서비스 정신을 낳고 있는 건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친절하지 못한 국적기 승무원들을 보면서 개인을 강조하는 우리의 교육이 과연 서비스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마저 들었다.
그래도 뭐 개인주의적 창의력이 만들어내는 문화 콘텐츠 강국임을 부인할 순 없으니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 낭만길 오타루 운하

영화 러브레터에 나오는 눈 덮인 그곳, 삿포로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여 아름다운 바닷가를 배경으로 달려간 오타루.
오래된 건물들과 하천 등이 일본의 옛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홋카이도의 무역항으로 선박 정비를 위해 사용됐던 오타루 운하가 운치 있게 흐르고 있고, 수많은 드라마의 배경이 된 오르골 당이 있고 르타오 과자 본점이 있고 기찻길이 남아있는 작은 바닷가 도시.
도착하자마자 오타루의 스시골목에 위치한 미스터 초밥왕의 모델이 됐다는 스시 전문점 마사즈시 본점에 오전 11시 35분에 도착했지만 대기 시간 45분~90분이란다. 오픈런을 했어야 했다. 인근 스시집으로 이동했는데 다 마찬가지. 제일 빨리 먹을 것 같은 스시집으로 들어가 기다리는데 앞에 예약 한 팀, 대기 한 팀. 그러나 장인정신으로 스시를 만드시는 할아버님 덕분에 우리는 1시간 30분만에 스시를 받을 수 있었다. 정말 신선하고 맛있긴 했다는...
여행은 항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삿포로, 오타루 매우 좋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