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큐레이션] 삶의 등뼈를 세워가는 기억의 힘
[콘텐츠큐레이션] 삶의 등뼈를 세워가는 기억의 힘
  • 미용회보
  • 승인 2019.11.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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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애도 23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의무는
타인을 기억하는 일이다

감춰야 했던 사적인 기억에서
공적인 역사적, 사회적 기억으로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빅토르 위고가 한 말입니다. 지난 8월 개봉한 <김복동>을 통해 첨예한 정치적 이슈의 더께가 두텁게 드리워진 ‘일본군 위안부’로 불리는 사람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났습니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지원을 위해 '나비기금'을 발족하는 등 인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2019년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 후 6개월 후 27년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개봉되었습니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녀. 아직 끝나지 않은 김복동 그녀의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하고, 기억하여 그 기억을 다양한 기록의 형태로 공유하고자 하는 남은 자들의 의무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한 그녀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그러나 그 삶의 기록은 평생을 고통으로 살아온 그녀가 입을 열어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사적인 기억이 동시에 가장 공적인 역사적 사실과 기록으로 전환되어 공적인 관심과 진실규명 운동으로 교차하며 촉발되었습니다. 하나둘 떠나가고 있는 그녀들이 홀로 자기만의 방에서 슬퍼하고 분노한 것이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분노해야 할 사회적 기억이 되어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으려 한 필사적 기록이 되었습니다.

▲ 사진1) 다큐멘터리 '김복동'
▲ 사진1) 다큐멘터리 '김복동'


아직 다 듣지 못한 말들
기억하여 기록하기
기록하여 기억하기

관련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3월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렸습니다.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라는 전시 타이틀입니다.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을 담은 3장의 사진 실물이 국내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전시였습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던 고 박영심 씨가 포로로 잡혀있을 당시 만삭이었던 모습이 담긴 사진 1점과 버마 미치나의 한국인 위안부 여러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 2점으로, 한국인 위안부가 찍힌 대표적인 사진들로 잘 알려져 있는 사진이지요.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이 3장의 사진 실물을 비롯해 그동안 발굴한 사료, 사진, 영상 등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이야기로 엮어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 전시회를 개최한 것인데요. 전시의 주제인 ‘기록 기억’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보여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을 ‘기록’해 계속해서 ‘기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아내 전시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던 전시였습니다. 

▲ 사진2)  '기록 기억' 서울도시건축센터
▲ 사진2) '기록 기억' 서울도시건축센터

 

삶의 등뼈가 되는
일상의 기록이 인생의 기록

▲ 사진3) 픽사베이
▲ 사진3) 픽사베이


대한민국은 지금 ‘글쓰기’ 열풍 중입니다. 동네 도서관의 글쓰기 강좌도 세분화되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시 쓰기’, ‘동화 쓰기’, ‘소설 쓰기’처럼 기존의 가벼운 글쓰기에 국한되지 않고 장르별로 특화된 강좌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니어센터의 ‘자서전 쓰기’, 다채로운 공공문화기관의 ‘일상의 글쓰기’, 대학입시학원과 취업 준비생의 ‘자기소개서 쓰기’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글쓰기 모임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출간하는 독립출간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에 영화나 책 리뷰, 요리, 사진, 여행에 관한 글을 꾸준히 공유해 셀럽 못지않은 유명인이 된 보통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의 풍요로움을 글쓰기라는 기록의 과정을 통해 삶의 활력을 느끼고, 잠재된 나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사람들이 다양한 연령층에서 저마다의 관심사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역사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자 특권입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살아내며 마주친 수많은 생과 사의 기로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핏빛 사실을 등뼈 삼아 정직한 묵상으로 손끝으로 빚어낼 수 있는 행위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만히 있으면 찬란했던 기억도, 가슴 아팠던 기억도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사라져버려 애초부터 없었던 ‘부재(不在)의 기억’이 될 것만 같습니다. 주체로서의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을 붙잡아두는 데에는 감각 경험을 기록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겠지요.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단어로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나의 선택과 생각이라는 선별 과정이 작동될 때 내 삶의 소중한 이야기는 모조리 빠져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쇠잔해지며 굽어가는 등뼈를 곧추세우듯 기록되는 삶으로 나를 다시 존재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진4) 픽사베이
▲ 사진4) 픽사베이

 

일상에서 기록이 구성되는 방식은 여타의 기록과 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기록을 위한 기록 이전에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의 이야기든 타자와의 이야기든 마음을 열고 자신과 타자를 바라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인지, 그 기록으로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의 기록은 삶의 가치를 관찰하고 성찰하며 되묻는 작업으로 선순환됩니다. 반드시 완결된 형태가 아니어도 되고, 대단히 드라마틱 한 사연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손으로 생각하는 기록의 과정을 통해 잰 걸음으로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느리게 걷고, 앞만 보던 시선을 옆을 살피게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옆에는 누가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삶의 등뼈가 되는 일상의 기록이 인생의 기록이 되는 그 자체로 자신을 강건하게 할 것이기에.



상처가 기록이 되고
기록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기록하고 기록물을 살피는
행위는 자신을 만드는 과정이다.
기록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록은 살아가는 목적이자 방법이며
생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불멸을 꿈꾸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안정희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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