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 신대욱
  • 승인 2024.07.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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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같은 일상의 기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절망 속에서도 빛나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소소한 변화를 깨닫는 순간의 행복을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반복과 차이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가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새벽에 동네 노인의 빗자루질 소리에 깨어나 이불을 개고 이를 닦는다. 수염 정리와 세수를 마치면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차에 오르고 그날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고른다. 그리고 옛 노래를 들으며 일터인 도쿄 시부야구 공공 화장실로 향한다. 점심은 일터 인근 신사에서 샌드위치로 때운다. 짧은 휴식동안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흑백 필름 사진으로 담는다. 맡은 구역의 화장실 청소가 마무리되면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단골 식당에 들러 하이볼을 마신다. 집에 돌아와선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영화는 그의 일상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12일 가량의 일상을 담는데, 영화에서 보여준 첫날에 할애된 시간만 30여분에 이른다. 그만큼 히라야마의 첫날을 자세하게 보여준 것은 그의 생활 패턴이 일정하다는 의미다. 다른 날들은 일정한 패턴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소소하게 보여주는데 할애하고 있다. 매일 같은 음악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변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게 이어지지만 지루해 보이진 않는다. 말수도 적고 동료와 대화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늘 미소를 짓는다. 집을 나설 때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고 운전할 때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웃는 표정이다. 일을 할 때도 꼼꼼히 구석구석 열심히 닦아낸다. 젊고 게으른 동료 타카시(에모토 도키오)가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텐데 너무 과하지 않냐는 핀잔에도 미소를 지을 뿐이다.
주말에는 코인 세탁소에서 밀린 빨래를 한다. 주중에 찍은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현상된 사진을 찾아온다. 집안 청소도 하며 찾아온 사진 중에서 괜찮은 사진만 골라 보관함에 담는다. 이후 헌책방에 들러 100엔 짜리 문고판 한권을 골라 단골 바에 들러 술을 들이키며 책을 읽는다. 
히라야마의 단조롭고 규칙적인 일상은 동료인 타카시와 그의 여자 친구, 단골 바의 주인과 전 남편, 조카 니코(나카노 이라사) 등 주변 인물들에 의해 소소한 변화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다투고 가출한 조카 니코가 찾아오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계기를 맞게 된다. 딸을 찾으러온 여동생을 오랜만에 마주하면서다.
히라야마의 과거는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어떤 계기로 의해 현재의 삶을 선택했을 터이다. 폴더 폰을 사용하며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즐겨 듣고 책을 읽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게 된 선택이다. TV나 컴퓨터도 활용하지 않고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생활 패턴은 아마도 과거를 누르면서 쌓아온 방식일 터이다. 영화에서 히라야마를 설명하는 것은 그가 듣는 음악 플레이리스트와 도서목록 정도다. 그가 출퇴근 시 듣는 음악 리스트는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 루 리드의 ‘Perfect Day’, 킨크스의 ‘Sunny Afternoon’,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등이다. 대체로 히라야마가 현재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지만, 첫날 출근 시 듣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은 불행한 과거를 후회하는 내용으로 히라야마의 과거를 암시한다. 이 노래는 영화 중반부 일본 번안곡으로 다시 나온다. 히라야마가 주말마다 들르는 단골 바 여주인이 부르는 곡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영화에서 히라야마가 읽는 도서는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코다 아야의 <나무> 등이다. 이중에서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11>에 실려 있는 ‘테라핀’ 내용은 주요 단서다. 조카가 빌려 읽는 책으로 내용이 언급된다. 조카는 히라야마에게 자신의 상황을 빗대 “테라핀에 나오는 주인공 빅터라는 남자애 나랑 닮았을지도 모른다, 완전 이해되는 기분이랄까”라고 말한다. 빅터는 엄마의 정서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엄마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인물이다. 조카로 인해 오랜만에 여동생과 마주한 히라야마는 아버지 소식을 듣는다. 요양원에 있고 오락가락하는 상태이며 예전 같진 않을 거라고 전한다.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떠난 이후 히라야마는 오열한다. 이를 통해 히라야마는 과거에 아버지와 불화를 겪고 가족과 떨어져 현재와 같은 삶을 살게 됐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현재의 히라야마는 아침에 일어나 미소를 짓고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슬쩍 비친 과거의 흔적을 통해 히라야마가 현재의 삶을 이루기 위해 고통스럽게 노력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를 버리고, 혹은 묶어두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그것은 하늘을 바라보며 작은 변화를 느끼는,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는 삶이다. 어쩌면 덧없이 사라져가는 삶의 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히라야마는 그렇게 하루

하루 사소한 기쁨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인 ‘코모레비(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자막으로 코모레비의 뜻이 설명된다)’로 표현된다. 코모레비는 오직 한번,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히라야마가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한 대사가 이를 함축하는 것 같다.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아 히라야마는 출근한다. 히라야마가 선택한 곡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다. 높이 나는 새들과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보며 새로운 새벽과 새로운 날을 느끼며 이것이 나에겐 새로운 삶이라고 말하는 내용의 노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엔딩 곡이다.
이때 히라야마의 표정은 우는 듯, 웃는 듯 복합적이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글썽거리는 표정이다. 어쩌면 삶의 복잡한 과정을 함축하는 것도 같다. 히라야마, 다시 말하자면 야쿠쇼 코지 배우의 얼굴과 표정으로만 길게 채운 엔딩 장면은 압도적이다. 칸 영화제가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 정도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내 화장실 개선 공공 프로젝트(The Tokyo Toilet)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적 거장인 빔 벤더스 감독에게 단편 영상을 의뢰하며 출발했다. 빔 벤더스 감독이 장편 영화로 역제안하면서 수작이 탄생하게 됐다. 이 공공 프로젝트에는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등 일본 출신 세계적 건축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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