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태어나자마자 30분 만에 죽은 새끼를 나흘간 끌고 이동한다는 기사가 뇌리에 남아있던 중, 지난 8월 12일 위의 2차 기사를 접했습니다.
자꾸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새끼의 사체를 자신의 머리와 입으로 밀며 계속 물 위로 들어 올리는 행동을 보였던 ‘J35’라 불리는 범고래는 무려 17일간이나 캐나다 태평양 북서부 바다를 1610km를 이동하며 이어온 애도 행동을 드디어 마쳤다는 겁니다. 즉, 부패하기 시작한 새끼를 바닷속에 수장한 겁니다. 새끼를 잃은 비통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죽은 새끼를 애도하는 듯한 범고래의 행동은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지요. 전문가들도 전례가 없는 ‘애도행동’이라고 말한 17일간의 애도 기간에 경외감을 느낌과 동시에 최근의 사건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낀 여름입니다.
부끄러움은 남은 자의 몫
범고래 기사를 처음 만나기 며칠 전 7월 23일과 25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정미홍 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은 큰 충격을 받았지요. 정치적으로 수많은 어록을 남기며 뉴스 보도에 자주 오르내리던 두 정치인은 이틀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미 범고래 기사는 두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표출된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모습들과 겹치었습니다. 두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말, 행동은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SNS로 뉴스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소에서 쉴새 없이 쏟아졌지요. 한쪽에선 애도의 품격을 갖춘 행동과 언어로, 또 다른 편에서는 차마 이 지면에 담을 수 없는 비아냥과 조롱, 누구의 유가족이 아니어도 심장을 헤집는 험악한 언어로 말입니다.
가장 참혹한 말은 ‘애도할 필요가 없다.’ ‘애도 받지 못할 죽음이다.’ ‘죽어서도 계속 고통받아라’라는 댓글이었습니다. 두 정치인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섬뜩한 민낯을 만나며 그리스 신화 『일리아스』로 ‘세상에 애도 받지 못할 죽음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적장(敵將)의 아버지와 함께 통곡한 아킬레우스
최초의 그리스 문학이자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시’라는 뜻을 지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s)』에 아킬레우스가 등장합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를 공략하던 중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친구를 죽인 트로이의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돌며 망자를 욕보이죠. 그러자,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시오.”라고 말합니다.
아들 잃은 아버지의 간절한 얘기를 듣던 아킬레우스가 함께 통곡하고 맙니다.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를 위해 꺼이꺼이 울었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때로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슬피 울며 그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찹니다. 프리아모스의 부성애에 감동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깨끗이 씻고 좋은 옷으로 덮어 짐수레에 싣고 진영을 몰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며,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기간은 공격하지 않을 것까지 약속합니다. 그 후,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원수 헥토르를 그의 아버지에게 내준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용서하라며 울음을 토해냅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은 소년 시절 전쟁터로 와서 청년이 된 무자비한 전쟁 병기 아킬레우스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갑니다. 즉, 호메로스는 인간이 죽음에 직면할 때 보이는 숨겨진 고귀한 인격을 묘사합니다. 비록 서로 죽이던 적이라 할지라도 적들의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인류애가 문명의 필연적 과정이라는 것을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의 마주함으로 풀어냈지요.
숨이 턱턱 막히던 지난여름, 두 정치인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일그러진 이면을 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일리아스(Ilias)』가 떠오른 이유입니다.
삶과 죽음의 그 한 끗 앞에서만큼은 애도할 수 있는 人間道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것, 그런 슬픔과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간의 도리를 부단히 사유하는 것, 이것이 휴머니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부재는 ‘마땅히’ 애도해야 하고, 누군가의 부재는 ‘애도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 없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요.
이미 떠난 고인을 비롯하여 우리 곁에는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듣고 느낄 가족, 친구, 동료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임을 버리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돌아보며 생각해 보게 합니다. 애도의 대상이 사회적, 정치적인 움직임의 중심에 서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되기 쉽겠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애도하기는커녕 소름 끼치는 조롱을 멈추라.
그들도 그들의 남겨진 가족도 나와 당신과 다르지 않다.
”
삶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가볍게 넘어서며 인식과 행동의 빈틈과 모순을 비웃으며 털어내기 어려운 슬픔을 선사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죽음을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타자화, 단순화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7월에 생을 마감한 두 분의 고인을 애도합니다.
김도경
(주)인포디렉터스 콘텐츠디렉터,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