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를 떠나 벨기에로 넘어온 난민으로 임시 쉼터에 머물고 있다. 동생 토리는 자국에서 학대당한 것이 인정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누나 로키타는 체류 허가증 심사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남매는 실제 가족이 아니다. 체류 허가를 위해 남매로 위장한 사이다. 그렇지만 실제 남매보다 더한 가족애를 지니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로키타는 체류 허가증을 얻어 가사 도우미가 되길 원한다. 돈을 벌어 아프리카에 남겨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새로 인연을 맺은 토리의 학교도 책임지고 싶어 한다. 로키타는 친남매임을 증명해야하는 체류 심사 인터뷰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끝내 체류 허가증을 받지 못한다. 벨기에 당국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추방될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결국 로키타는 위조 허가증을 구실로 불법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다. 허가증을 얻은 토리와도 떨어져 지내게 된다.
무겁고 어두운 소재 담담하게 묘사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이민자를 다루고 있다. 무겁고 어두운 소재지만,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더 이상 밀려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남매의 애틋한 우정이 절절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난민으로 유입된 이민자를 둘러싼 착취 구조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어렵게 벨기에에 도착한 토리와 로키타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체류 허가증이 나오기 전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로키타는 두고 온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법 입국을 도왔던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허가증이 나온 어린 토리도 혼자 힘으로 앞날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검은 유혹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남매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베팀 밑에서 배달 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피자집 일이란 것이 불법적인 마약 배달이다. 신분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이 제한적이어서다. 베팀은 피자집을 운영하지만, 실상은 거대 마약상이다.
로키타는 체류증 발급에 실패하자, 베팀이 위조 체류증을 미끼로 제안하는 불법적인 일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 로키타가 배당받은 일은 대마초 속성 재배 작업이다. 그것도 감금된 상황에서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전화 유심 칩마저 빼앗긴 채로다. 로키타는 아프리카 가족에게도, 친남매처럼 의지했던 토리와도 단절된다. 영화 후반부의 충격적인 비극은 갈수록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로키타의 처지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토리와 로키타>는 그만큼 냉정하게 주인공을 관찰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처지를 동정하지도, 비극적인 감정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주인공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따라 간다. 흔한 풍경 인서트 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연 풍광이 주는 서정성이 배제됐다. 이들에게 자연 풍광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장치다. 사실적인 묘사의 뚝심으로 밀고 나간다.
<토리와 로키타> 연출자인 벨기에의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은 시의성 있는 이야기와 무게감 있는 연출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통찰해왔다.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이력답게 이들의 영화는 감정이입을 배제한 사실적인 묘사와 관찰, 핸드헬드와 롱테이크 등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토리와 로키타>도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담담한 시선으로 토리와 로키타의 비극을 따라간다. 복지국가의 시스템 안에서도 난민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비판적인 시선이다. 국가 시스템뿐만 아니라 시민의 일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이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우정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토리와 로키타 관계가 그렇다. 친남매는 아니지만 우정으로 가족 이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다. 영화 후반부 누군가를 지켜내는 장면은 이들의 아름답고도 강렬한 우정을 전한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모순 통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토리와 로키타>는 이전 영화와 달리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비극을 고조시킨다. 토리와 로키타 남매는 피자집에서 고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로키타가 지인으로부터 배운 노래라고 소개한 뒤 동생 토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는 ‘알라 피에라 델레스트(Alla fiera dell'est)’라는 이탈리아 노래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동전 두 닢에 생쥐 한 마리를 샀네. 그런데 고양이가 와서 생쥐를 먹어버렸네. 그런데 개가 와서 고양이를 물었네. 그런데 나무 지팡이가 나타나서 개를 때렸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로, 초반부 식당 장면과 엔딩에 이 곡이 쓰였다. 남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 안에서 가장 밝고 활기차며, 경쾌하다. 비극적인 사건이 거쳐간 후 엔딩 자막과 함께 다시 이 노래가 반복될 때, 흘러드는 감정들로 먹먹해진다. 남매를 착취하는 구조를 상징하는 듯한 가사와 남매의 비극이 겹치면서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로 199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2005년 <더차일드>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토리와 로키타>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상을 수상했다. 로키타 역을 맡은 졸리 음분두와 토리 역을 맡은 파블로 실스는 비전문 배우로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며, 절박한 처지에 몰린 남매 역할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