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짐머와 존 윌리엄스, 퀸시 존스는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불린다. 이들을 비롯해 뛰어난 음악가인 브루스 스프링스턴, 팻 매스니, 영화사에 남을 유명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올리버 스톤, 롤랑 조페, 세르지오 레오네, 다리오 아르젠토, 왕가위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통해서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그래미를 석권한 세계적인 영화 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지난 2020년 7월 6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모하는 영화기도 하다. <시네마 천국>으로 널리 알려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생전의 엔니오 모리꼬네와 나눈 대화와 그와 협업해온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영화보다 음악이 더 기억에 남게 한 전설
엔니오 모리꼬네는 1961년 루치아노 살체 감독의 <파시스트>로 영화 음악에 입문한 이후 60여 년간 400편이 넘는 영화에 음악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의 영화 OST는 영화음악으로는 드물게 전 세계적으로 7,000만장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메트로놈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연필을 쥔 엔니오 모리꼬네가 악보에 음표를 적어나간다. 그 사이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교차로 보여준다. 마치 메트로놈의 움직임에 맞춰 일상을 이어나가는 리듬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쩌면 음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단순한 규칙들로 이뤄진 일상의 리듬으로 60여 년간 영화 음악을 완성해왔을 것이란 암시다.
이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인터뷰가 나온다. 음악 입문과 영화 제작 당시의 일화 등이 담긴 진술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인터뷰를 통해 의사가 꿈이었으나 군악대 트럼펫 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트럼펫에 입문했고, 이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배운 일화를 전한다. 음악원에 다니면서도 생계를 위해 트럼펫을 연주해야 했던 일화도 들려준다. 무엇보다 그의 스승인 현대음악 작곡가 고프레도 페트라시로부터 작곡을 배운 시기부터 인정받기까지 과정을 담담하게 전하며, 그의 영화음악 출발이 어디였는지를 알게 한다. 클래식과 영화음악 사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도 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다. 실제 엔니오 모리꼬네는 음악원 졸업 후 서부영화 음악을 담당했을 때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다. 그의 스승과 동료들에게 영화 음악을 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당시 한 방송에서 클래식 전공자가 영화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반예술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음악은 천박하다는 편견을 드러낸 일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화음악에 혁신을 더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미 영화음악에 입문하기 전 탁월한 편곡 능력으로 이탈리아 대중음악을 부흥시키는 역할로 명성을 쌓기도 했다. 대표적인 곡이 잔니 메치아의 ‘일 바라톨로’다. 이 곡은 당시 파산 직전의 이탈리아 음반 회사인 RCA를 회생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계, 음악계 거장들도 인정한 그의 음악
그의 능력은 영화음악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웨스턴 3부작(<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갱들>, <석양의 무법자>) 영화음악을 담당하면서 명성을 확고히 한다. 휘파람과 채찍소리, 전기 기타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기존 서부영화와 다른 결의 독창적인 영화음악으로 일대 혁신을 이뤘다는 평을 들었다. 여기에는 현대음악을 전공한데다 당대 아방가르드 음악의 최고봉이었던 존 케이지에 영향을 받아 친구들과 ‘일 그루포’를 결성해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으로 영화계에서 입지를 다진 모리꼬네는 70년대로 접어들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혁명전야>, <1900>)와 질로 폰테코르보(<알제리 전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살로, 소돔의 120일>, <테오라마>), 엘리오 페트리(<완전범죄> 등) 등과 작업하며 변화를 겪는다. 공포영화의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과도 협업한다.
이후 80년대 들어서며 대중적인 명성이 올라간다. 이전 음악과 달리 서정적인 선율이 가미되며 영화보다 음악을 더 사랑하는 관객을 낳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대표적인 영화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등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는 메인 테마곡뿐만 아니라 데보라의 테마도 널리 알려졌고, <미션>의 대표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별도로 가사가 붙어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로 재탄생해 지금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골든글로브 음악상 3회, 그래미상 3회 수상으로 명성을 확인받았지만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던 모리꼬네는 마침내 2015년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로 음악상을 수상하며 음악인생에서 정점을 찍는다. 6번째 후보로 오른 뒤 수상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영화음악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드라마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영화와 별개로 독립적인 서사가 있는 것처럼 대중들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는 평을 듣는다. 현대음악과 대중음악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러면서도 실험적인 시도가 가미돼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한 비결일 터이다. 음악에서 그만의 인장이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음악가인 셈이다. 그만큼 엔니오 모리꼬네는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처럼 음악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수많은 자료 화면과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통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인생을 돌아본다. 무엇보다 다른 개인사보다 모리꼬네의 음악이라는 축으로만 종합되고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유명 아티스트들도 그의 음악에만 집중해 찬사를 던진다. 한스 짐머는 “엔니오 모리꼬네는 우리 인생의 사운드 트랙”이라는 찬사를 던지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때도 새로웠고, 지금 들어도 새롭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타란티노는 “엔니오의 음악은 눈에 보인다”고 했고, 왕가위는 “사람들이 엔니오를 손꼽는 이유는 엔니오의 음악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상찬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영화음악을 천박하다고 했을 때, 그 상황을 설욕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싶었다.”고 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평생의 노력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상찬으로 보상받았다. 특히 그의 동료 클래식 작곡가이자 고프레도 페트라시의 제자인 보리스 포레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고 “영화음악에 대한 통념을 뛰어넘은 걸작”이라며 그를 인정했다. 영화음악을 하는 모리꼬네를 인정하지 않던 클래식 음악계가 드디어 그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