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 “인공지능 시대, 존재의 방식을 묻다”
원더랜드 - “인공지능 시대, 존재의 방식을 묻다”
  • 신대욱
  • 승인 2024.07.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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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 죽거나 의식 불명인 이들을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해주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다. 어린 딸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 바이리(탕웨이), 사고로 의식불명인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 속 우주인으로 복원한 정인(수지)은 원더랜드 서비스 덕분에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원더랜드’의 수석 플래너 해리(정유미)와 신입 플래너 현수(최우식)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 관리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의식불명인 태주가 깨어나 정인 곁으로 돌아오고, 정인은 현실의 태주와 원더랜드 속 태주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한편, 원더랜드 속에서 고고학자로 복원된 바이리는 현실 세계의 딸이 실종된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이때 원더랜드 서비스에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AI가 떠난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영화 <원더랜드>는 가까운 미래에 일상화될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소재로 한 SF 휴먼 드라마다.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슬픔은 복원된 AI를 통해 지연시키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영화 속 원더랜드 서비스는 죽거나 의식불명인 이들을 빅데이터로 복원, 영상통화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혁신적인 기술이다.
영화는 이 기술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기보다, 서비스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복원된 AI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크게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바이리와 딸, 정인과 태주, 그리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해리와 현수 등 세 파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교차해 보여준다. 원더랜드를 이용하는 인물들의 사연을 에피소드처럼 펼쳐놓는다.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원더랜드를 이용한다는 조건만 같을 뿐, 특정 사건으로 묶이지 않는다. 각자 마주하는 사건과 감정만 다르게 존재할 뿐이다. 그 사이에서 변화하는 인물들에 집중한다.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이들이다. 원더랜드에 복원된 AI를 향한 믿음과 의심의 충돌이다. 그만큼 영화 <원더랜드>는 가상세계를 세밀하게 재현하기보다 이를 이용하는 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정인과 바이리의 변화에 집중한다. 정인은 AI로 복원한 태주의 전화를 받고 일어나고 하루를 시작한다. AI 태주는 항상 다정하고 배려가 넘친다. 정인은 이런 태주와 함께 하는 것이 즐겁지만 그를 직접 만지거나 느낄 수 없어 회의감에 빠진다. 현실의 태주가 깨어났을 때도 처음에는 기뻐했으나, 사고로 인한 뇌인지 장애로 사고 전의 태주가 아니라고 느낄 때 혼란스러워한다. 이로 인해 AI 태주에 의지하게 되는데, AI 태주와 현실의 태주 사이에서 불안함은 커져만 간다.
AI인 바이리는 정인과 대척점에 서 있다. 바이리는 원더랜드 속에서 고고학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려 한다. 생전 딸에게 친구가 돼주지 못한 회한이 남아있는 바이리는 원더랜드 속에서는 동료가 바쁘게 찾아도 딸에게 걸려온 전화만은 꼭 받으려 한다. 통화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바이리의 딸은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런 손녀를 안타까워한 할머니(바이리의 엄마)는 바이리에게 사망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딸의 실종 소식을 들은 바이리는 현실 세계로 진입하려 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낙관적인 미래

현실 세계의 정인이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면, 바이리는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AI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원더랜드에 존재하는 AI는 현실 세계의 살아있는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용자가 원해 서비스를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게 설계됐다. 그만큼 원더랜드는 독자적인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 종속된 가상의 공간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도 사용자의 기억과 데이터에 기반해 복원된 가공의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바이리의 존재는 영화에서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현실세계에 개입하려 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AI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 생성형 AI로 인한 윤리 문제에 봉착한 현 시점에서 의미있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바이리와 함께 원더랜드 인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준(공유)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성준은 원더랜드에서 AI로 복원된 인물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가상 인물로 짧게 등장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성준은 혼란스러워하는 바이리의 상황에 적극 개입한다. 성준은 바이리에게 “진짜라고 생각하면 진짜가 된다”는 말을 남기며 바이리의 변화를 이끈다.
<원더랜드>가 그리는 미래는 낙관적이다. 전체적인 톤도 따뜻하다. 불안한 감정의 흔들림은 있지만 파국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SF라는 장르적 외피만 둘렀을 뿐, 정작 영화를 이끄는 것은 멜로나 가족 드라마적 요소다. 원더랜드가 구현한 세계는 휴대폰 속 화면에만 존재하며, 이를 통해 등장하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다. 시스템 개발자인 해리는 어렸을 때부터 원더랜드에 복원된 부모와 지속적으로 일상을 나누고 있고, 역시 시스템 운영자인 현수는 원더랜드 속에서 구현된 AI(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는 인물)와 탁구를 치며 교류하고 있다.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정인은 현실의 태주를 받아들이며,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까지 다가갔던 바이리는 문제 해결 뒤 다시 원더랜드로 향한다. 그렇게 미래의 인류는 가상의 AI와 공존하는 삶을 택하는 듯하다.
영화는 느린 속도로 각 인물들의 일상을 보여주다 특정 인물들의 감정이 흔들리며 균열을 내는 지점까지 유려하게 움직인다. 감정선이 극에 다다를 때, 서둘러 결말을 봉합한 듯한 느낌도 준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믿음의 문제,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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