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 당신 마음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음악이야기 - 당신 마음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 신은경
  • 승인 2025.03.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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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생각해왔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처럼, 나의 삶도 아름답기를. 오랜 시간 동안 ‘아름다움’은 내 삶의 화두였다. 때로 내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꼈기에 더욱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낮은 햇살이 창안으로 들어와 나의 세상을 비출 때, 아! 아름답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음을 알 때, 그 조화가 아름답다. 내가 울거나 박장대소를 하거나, 용기 있거나 나약해 보이는 그 모든 것을 수용할 때 아름답다. 음악을 통해 사람이 생기를 가질 때, 그 맑은 얼굴이 아름답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힘이 나는 때이다.

딩동, 벨소리가 울린다. 문을 열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가르쳤던 제자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아들을 둔 엄마가 되어 내 앞에 서 있다.
몇 년이 흐른 것일까. 30년 세월이 지나서 우리가 다시 함께 피아노 앞에 앉다니. 
그녀는 그때와 별다르지 않은 얼굴이지만 훨씬 성숙한 태도와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지혜를 쌓아 올린 것이리라. 

제자는 수소문해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일상에 지친 그녀는 피아노를 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싶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어릴 적 선생이었던 내 생각이 났단다. 과거 자신이 속을 썩여 연락을 망설였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첫 제자였기에 애틋한 존재일 뿐이었다. 첫 아이 키울 때 미숙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피아노를 처음 가르친다는 것이 두려웠던 기억만이 난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첫 제자를 다시 받아들인다.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피아노 작품을 쳐내려갔다. 얼마나 많이 연습했나 물어보니, 매일 4시간 이상 전공하는 학생처럼 피아노 연습을 했단다. 제자의 갈급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생일 때, 제자들은 대체로 취미로 피아노 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었다. 내 두뇌에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을 제자는 소환해냈다. 내가 혜화동 음반 가게에도 데려가고, 피아노 콘서트도 데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놀이공원도 함께 갔던 사진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주고,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피아노 연습에서 환기시키고자 했던 어린 선생이 보인다. 

제자는 오랜만에 가져온 악보를 펼쳤다. 그 안에는 20대의 내가 적어놓은 필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피아노 작품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음악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조성, 화성의 느낌, 곡의 구조뿐만 아니라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곤 했다. 학생들은 작품 이해가 되었음에도 곡의 분위기를 살려 연주하는 것은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곡 분위기에 맞는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기도 하고,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가기도 했다. 추상적인 음악을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방법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제자가 나의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를 찾았을 때, 그는 말했다. “선생님이 예전에 레슨할 때 이야기 지어주시던 기억이 나요.” 어린 시절의 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의미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이어지는 제자들과의 인연이 있다. 군대에 가서 그 귀한 전화를 돌려주는 제자, 대학원 입시로 레슨 받은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내가 생각났다며 스승의 날에 갑자기 선물하는 제자, 진로에 관한 고민, 삶에 대한 고민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남아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게 레슨이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피아노 앞에 앉아 학생을 마주하면 나는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 음악 천재들의 우주로 학생을 끌어당긴다. 우리는 음과 음 사이에 놓인 허공의 파장을 느끼고 함께 울리는 음의 조화를 느낀다. 음악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느끼면 사랑할 수 있다. 여기에 스토리라는 도구는 아주 유용하다. 학생들이 음악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도록 옆을 지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나는 천재들을 추앙하느라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제자들에게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싶다. 작품을 내 손끝 아래 두고 테크닉을 활용해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르치고 싶은 피아노다.

손가락이 건반에 닿을 때 나의 정신상태가 반영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피아노 앞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삶에 무기력한 태도를 가진 학생은 손가락에 힘이 없었고, 지나치게 긴장한 학생은 손이 뻣뻣했다. 때로는 테크닉보다 마음을 먼저 다독여야 했다. 어느 때는 2시간 동안 내내 얘기하다 돌아간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음악 속에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나는 바란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길. 음악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에서도 꽃피우길.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이유이며, 나 또한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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