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이야기3 - 가발
머리카락 이야기3 - 가발
  • 서영민 기자
  • 승인 2018.07.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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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 생산지,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인모(人毛) 자원 따라 이동하는 경향 있어”

 

 

가발공장의 수출역군, 60~70년대 우리 누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의 구로디지털단지 그 당시는 구로공단에 위치한 가발공장은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공들의 일터였습니다. 60년대 태동한 가발산업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66년에는 1천62만 달러, 70년대에는 수출 1억 달러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지금이야 1억 달러 수출이 아무것도 아닐 만큼 우리나라 경제(2017년 수출액 5738억6500만 달러)가 커졌지만, 70년대 1억 달러 수출은 우리나라 총 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였으며, 가발은 단일 품목으로는 의류와 합판 다음으로 3위의 수출 효자상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가발은 어디서 수입되고 있을까요?
                                                                                                                                                      서영민 홍보국장 yms@beautyassn.or.kr

 


 

가발의 역사

 

인간은 언제부터 가발을 쓰기 시작했을까? 의외로 가발의 역사는 BC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대 이집트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과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이르면 남자는 대머리를 감추고 변장을 위해서 가발을 썼고, 여자들은 다양한 헤어스타일 모양과 색상을 원해서 가발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유럽에서는 16세기경부터 부분가발이 유행했으며, 17세기 초에는 프랑스 궁전에서도 가발이 유행되었고, 17세기 후반에는 전 유럽에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사기>를 통해 가발 사용을 추정할 수 있는데 신라 성덕왕 때나 경문왕 때 당(唐)나라 사신 편에 다리를 예물로 가져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여인도(女人圖)의 머리 모양이 다리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영정조 때 가채가 크게 유행하는데 다리 값이 너무 비싸서 국법으로 가채를 금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개화기 이후에는 서양식 연극과 무용·오페라 등에서 극중 인물의 분장을 위해 가발이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목적으로 가발이 사용되고 있는데 남성들의 경우는 대머리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멋내기를 위해서 가발을 착용하고, 여성들은 머리숱을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서나 멋내기 등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발이 이렇게 유행하게 된 이유로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항상 붉은색 가발을 착용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나타난 탈모를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젊은 시절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80개가 넘는 다양한 색상의 가발을 갖출 만큼 가발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가발의 생산

가발은 크게 재료의 구분으로 보면 인조모발을 이용하는 가발과 사람의 머리카락을 모아서 만드는 인모가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가발 제작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수공업산업으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가발은 60년대까지는 인모(人毛)로만 만들어졌으나,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하면서 2차세계 대전이 후 값싼 나일론이 전세계에 보급되고 5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게 되면서 합성섬유의 인조가발도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미국수출 효자상품이던 한국가발은 70년대 중반 정점을 찍고 70년대 후반부터 사양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60~70년대 세계적인 가발 생산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 민족의 특성에 걸맞게 가발의 품질이 뛰어났습니다. 꼼꼼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일일이 꿰맨 가발은 기존 가발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고, 수명도 길어 미국시장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더군다나 한인교포와 유학생들이 가게를 차리고 우리나라 가발을 직접 유통한 점도 가발산업 성장에 큰 힘이 됐습니다.

 

 

가발 생산, 지금은 어디로?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임금이 오르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가전제품이 수출상품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가발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드는데 70년대 중반에 10대 수출상품 목록에서 밀려납니다. 가발공장 터가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주요 수출국이었던 미국시장의 수요가 줄어들고 후발주자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값싼 노동력으로 확보한 나라들의 저가공세는 국내 가발시장의 쇠퇴를 가져옵니다. 가발생산 공장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나는 것은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가발의 품질을 기계나 로봇이 아직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로디지털단지(과거 구로공단)라는 지명에 디지털이 들어갔듯이 과거 40여 곳 넘던 가발공장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 철수했습니다. 지난 65년 수출장려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품목으로 각광받던  가발의 영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사라졌던 가발산업은 2000년대 들어 고부가가치 패션산업으로 재기를 꿈꾸는데, 트렌드에 맞는 상품기획과 디자인개발은 국내에서 진행하고, 생산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위탁하는 방식입니다. 또 하나의 가발산업 부활은 그동안 일본 업체들이 독점하던 고품질의 합성원사 생산기술을 국내업체들이 연구개발(R&D) 투자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수출이 늘고 있습니다.

 

 

가발의 미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가발의 미래를 밝게 전망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탈모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가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령화에 따라 암 등의  질병이 흔해져서 암수술 이후 환자들이 항암치료시에도 탈모가 심해지기 때문에 가발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물론 멋내기 위해서 다양한 색상의 가발과 부분가발 등의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모와 품질을 경쟁하는 인조모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가발산업의 전망을 밝게 합니다. 보다 가볍고 착용감이 좋은 가발개발에 대한 경쟁도 각 나라들이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발은 오래 된 역사만큼이나 오래도록 우리 인간과 함께 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바로잡음  지난 호 <머리카락 이야기2> 모발의 일생 기사 중 ‘한 달에 10~12cm 자라는데’기사에서 10~12cm 는 오타이므로 10~12mm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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